해마다 졸업을 하고 학생들이 곁을 떠나면 자주 부르던 그들의 이름마저 얼굴과 함께 가물가물 잊혀지곤 한다. 그런데 지선이가 졸업한 지가 3년이 지난 지금도 유달리 여린 그 모습이 눈에 선한 까닭은 무엇일까.
급우들중 가장 키가 작고 몸매가 유달리 가냘프던 지선이는 말소리마저 작아 소곤대는 것만 같았다. 강의 중엔 늘 맨앞자리에 앉아서 눈을 초롱거리고 있었다. 질문을 하면 수줍은 얼굴에 미소를 띄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하였다.
지선이네 학년 강의는 내 연구실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거너편 강의실에서 이루어졌다. 개강하던 첫날 연구실로 들어가려는데 열린 강의실 문 틈으로 청소를 하는 지선이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. 들여다 보니 책상을 겸용하는 의자들은 이미 잘 정돈이 되어 있었고 밀걸레로 바닥을 한창 닦고 있었다. 한참 후에 다시 들여다 보니 물걸레로 의자를 일일이 닦는 중이었다. 내가 들여다 본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정성을 다하여 5,6십 개가 넘는 의자들을 닦고 있는 지선이의 두 손!
나는 그런 지선이의 모습을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볼 수 있었다. 이번 주까지 하다가 말겠지... 그런 나의 추측은 늘 빗나가고, 지선이는 다른 학우들이 강의실에 들어서기 2시간 전에 도착하여 홀로 청소를 다해 놓았다.
난 한번도 청소하는 지선이와 눈이 마주치거나 그를 불러 칭찬을 해 본 적이 없었다. 어느날은 보이지 않아 강의실 안으로 한 발 들여 놓으려는데 이미 청소를 마치고 강의실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. 그런 지선이에게 차마 들킬까 봐 얼른 물러서 나와 버렸다.
학교에는 청소 아줌마가 엄연히 따로 있다. 그 누구도 지선이에게 청소를 하라고 시킨 이도 없고, 칭찬을 해 준 이도 없다. 아마도 한 학기 내내 함께 강의를 듣는 학생들중에서 한 명도 지선이가 강의실을 몰래 청소를 해 놓았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. 어느날은 강의중에 여러 학생들 앞에서 칭찬을 해 주려다가 참고 말았다. 칭찬마저도 은밀히 봉사를 하는 지선이에게 오히려 누가 될 것 같아서....
지선이는 그날 청소를 다 마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을까.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 달라고... 아니면 자신 때문에 함께 강의를 듣는 모든 학우들을 기쁘게 해 달라고 .... 예수님의 손은 조용 조용히 책걸상을 닦던 지선이의 손처럼 작지만 강했을 것 같다. 어느 직장에 일찍 출근하여 옆 자리 의자와 책상을 닦아 주고 있을 지선이가 보고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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